[역사(歷史)] 창녕 교동고분군과 비화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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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2-05 23:16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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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으로써 우리 文化(문화)재를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과 함께 history속 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비화가야에 대해 history적 인식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 것은 당연히 history학을 배우는 학생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그 지역이 영남文化(문화)권의 중심지였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그러나 Japan사람들이 ’원래 Japan 땅‘ 이라고 우기는 비화가야(飛花伽倻)의 땅이다. [참고자료(data)] ․ 이점호, 선우미디어, 『잊혀진 왕국 非火加倻 』
다. [참고자료] ․ 이점호, 선우미디어, 『잊혀진 왕국 非火加倻 』 ․ 박창희, 이른아침, 『살아있는 가야사 이야기』 ․ 문화유산답사회, 돌베게 『경남』 ․ 이덕일, 학연문화사,『살아있는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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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창녕 교동 고분군의 발굴
․ 문화유산답사회, 돌베게 『경남』
순서





창녕 교동고분군 창녕교동고분군 비화가야 창녕비화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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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우리가 조사해야할 창녕지역은 `제2의 慶州‘ 로 불릴 정도로 가야시대의 유적 유물이 많다.
․ 박창희, 이른아침, 『살아있는 가야사 이야기』
설명
[역사(歷史)] 창녕 교동고분군과 비화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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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의 교동고분군을 조사하면서 삼국시대에 창녕지역에 있었던 비화가야에 대한 조사를 함께 한 보고서입니다.
․ 이덕일, 학연문화사,『살아있는 한국사』
1918년에서 1919년에 걸쳐 Japan인에 의해 교동고분군의 일부가 발굴 조사되었지만 발굴보고서가 제대로 간행되지 못한 것은 물론, 발굴유물의 대부분은 Japan으로 옮겨가고 일부만 국내에 남아있다 Japan으로 옮겨간 유물의 일부분이 현재 도쿄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창녕의 교동고분군을 조사하면서 삼국시대에 창녕지역에 있었던 비화가야에 대한 조사를 함께 한 보고서입니다. 따라서 ’임나Japan부설(任那日本附設)‘을 추종하는 Japan인의 도굴로 속이 텅 비어버리고 21기만 남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