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시대 한국교회의 보수적 반공주의와 진보적 민족주의 대립의 비판적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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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10-09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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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증거로서는 북한지역에서 이뤄진 ‘건국준비위원회’ 적극적 조직과 참여, 그리고 기독교세력의 정치정당 조직운동에서 확인 할 수 있는바 평남북지방 기독교세력이 강한 곳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미소가 남북한을 분활점령하는 상황 속에서, 북한사회에서 기독교세력은 가장 빠르게 해방 직후 민족의 근대국가형성에 적극적 행동을 보이면서 참여하였다.c322 , 분단시대 한국교회의 보수적 반공주의와 진보적 민족주의 대립의 비판적 성찰인문사회레포트 ,
분단시대 한국교회의 보수적 반공주의와 진보적 민족주의 대립의 비판적 성찰
2.1. 해방정국에서 북한의 기독교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의 갈등
해방직후 미·쏘 양대 세력을 축으로 한 세계냉전구도의 국제정치질서 속에서 한민족은 ‘이념과 사상을 초월하는 민족적 대단결’을 통해 통일된 근대적 민족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고 분열되고 말았다. 평남건국준비위원회(위원장 조만식), 황해도 건국준비위원회(위원장 김응순목사…(省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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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포트/인문사회
다. 1946년말 현재 북한의 인구는 925만 7천명정도였는데, 기독교신도수는 약 20만명, 천주교 신도수는 약 5만명이어서, 전체북한인구대비 신도숫자 백분율은 3% 미만이었지만, 잘 조직되고 훈련되고 지식과 경제능력을 갖춘 기독교세력을 도외시하고서는 어떤 정치집단도 북한사회를 지배할 수 없을 만큼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을 가졌고 새로운 근대민주국가 형성을 가능케 할 창조적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다.